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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장사상륙작전 .. LST 문산호 .. 인천 상륙작전의 양동작전

1950년 9월 15일 영덕군 장사리 앞바다에서 좌초된 LST 문산호 .


학생들로 구성된 학도병들을 태우고 장사리에 상륙하려던 2,700톤급 LST 문산호는


길이 100m 에 넓이 35m 의 2700톤급 전차 상륙함 이였습니다.


최초 1943년 9월 인디애나에서 건조된 LST 1클래스 전차 상륙함으로,


건조후 태평양 함대에서 활약하다 2차 대전이 종료된후 임무 해제되어 재고보관처리 되었다가,


1947년 2월 우리나라 정부에 매각되면서 '문산함' 이라는 새로운 함명으로 우리나라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이 배를 운용한 곳은 대한해운공사 .. 즉 민간에 의해 사용된 민간선박 입니다.




이러한 문산호는 1950년 9월 학도병 4개중대 800여명을 싣고 부산항을 출발해 9월14일 새벽 5시34분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태풍 케지아의 높은 파도로 인해서 좌초하게 되었고,


해안가의 소나무에 묶은 밧줄 하나만으로 상륙을 시도했지만 적군의 날아오는 총탄과 높은 파도로


많은 학도병들이 목숨을 잃었고, 배는 결국 침몰하여 배와함께 수장된 학도병들도 있다고 합니다.


상륙에 성공한 학도병들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고지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사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서울을 탈환하게 되었습니다


북한군을 뒷쪽에서 교란시키는 양동작전을 펼친 것 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후 1950년 9월19일, 


LST 조치원호가 장사리로 갑니다.


LST 문산호의 학도병들을 구출하기 위한 철수작전을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LST 조치원호의 무사 철수를 위해 엄호 사격을 하던 학도병 39명은 조치원호의 회항으로 장사리에 고립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 LST 문산호의 장사상륙작전은 6일에 걸쳐 139명의 사망자와 92명의 부상자를 남기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LST문산호가 민간선박이고 학도병들이 정규군이 아니며, 


군의 작전명령 등의 기록이 없어 이들을 전사자로 인정해줄 수 없다고 했었지만,


이후 작전명령과 기록은 물론 맥아더장군의 친필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편지가 발견되는등 재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바로 장사상륙작전이 존재 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1997년 3월6일 역사적인 발견이 있었는데요..


LST 문산호가 장사리 앞 해안을 수색하던 해병다 1사단 대원들에 의해서 갯벌속에서 발견된 것 입니다.


영덕군은 이 문산호를 복원해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조성사업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2013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역사에 흔적없이 사라져갈뻔 했던 호국의 영혼들 ... 


그들의 희생과 애국심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우리는 편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것 일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